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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환율전쟁’ 본격화되나?
‘아베노믹스’에 대한 미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2016년 07월 01일 (금) 기업앤미디어 web@biznmedia.com

1990년 이후 일본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디플레이션 국면을 언제 탈피할 것인가 하는 현안이었다. 일본의 경제 성장률이 1980년대 연평균 4.7%에서 1990년대 이후 1.1%로 급락한 것은 내수 부진에 주로 기인한 점을 감안하면 디플레이션 우려도 이 요인이 가장 큰 것으로 지적돼 왔다. 거듭된 정책실수도 침체기간을 연장하는 요인으로 가세됐다.

1990년 이후 무려 25차례가 넘는 경기부양책은 재정사정만 악화시켜 왔다. 일본 국채의 95%를 갖고 있는 일본 국민들이 국가부도 시 겪게 될 '낙인 효과'보다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줘 디폴트에는 몰리지 않았으나 국가 채무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일본 경제는 내수 부문의 활력을 되찾아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탈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수 부진이 고용과 임금 불안정성 증대, 고령화 진전 등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요인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재정여건도 크게 악화돼 1990년대처럼 정부가 민간수요를 대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내수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여건 이상으로 강세를 보이는 엔화 가치를 약세로 돌려나야 가능하다. 1990년 전후 ‘대장성 패러다임’과 ‘미에노 패러다임’ 간의 논란이 거세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전자는 ‘엔저와 수출’로 상징되나 후자는 ‘물가안정과 중앙은행 독립성’으로 대변된다.

   
 

현 집권당인 자민당은 일본 경제가 1990년 이후 장기간 침체된 것은 당시 일본은행 총재였던 미에노가 고집스럽게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타협적 통화정책이 가장 큰 요인으로 봤다. 이 때문에 아베가 2012년 12월 자민당 총리로 재집권하자마자 엔저를 통해 성장을 지향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현 일본은행 총재를 영입해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아베노믹스를 추진한지도 벌써 4년이 넘었다. 당초 의도대로 효과를 거두기보다 국제금융시장 참가자인 각국에게 갈등만 조장시켜 왔다. 인위적인 자국통화 평가절하를 통한 경기부양은 인접국 혹은 경쟁국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전가시키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 my neighbour policy)’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추진 4년... 곳곳에서 부작용만
일본 내부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 가장 타격이 심한 경제주체는 사전에 대책을 강구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유도됐던 엔저로 채산성이 크게 악화됐던 수입업체다. 일본 국민도 수입물가 급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고통이 임계수준을 넘어섰다.

올해 7월에 예정된 참의원 선거를 벼르고 있을 정도다. 가장 반겨야 할 수출업체까지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장기간 지속된 엔고에 대응하기 위해 수출업체가 해외로 진출해 이제는 ‘기업 내 무역’ 이 보편화됐다. 수출결제통화도 한때 80%를 웃돌았던 달러 비중을 40% 내외로 낮춰 놓았기 때문에 엔저가 되더라도 채산성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베 정부와 일본은행이 마지막 도박을 강행했다. 올해 1월말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도입했다. 마이너스 금리제도란 은행이 자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해 쉽게 영업하지 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출을 도모하라는 취지에서 추진된다. 경험국의 사례를 보면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민간예금의 마이너스 금리로 귀착된다. 민간이 예금할 때 마이너스 금리인 수수료를 낸다면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치하기보다 소비하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상황이 발생한다. 오히려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전에 예치했던 예금까지 인출해 시장에서 퇴장시킨다. 이때 고액권이 선호되면서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떨어져 경기가 더 침체된다. 고액권 회수율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에서 100달러 회수율은 2013년 82%에 달했지만 2014년에는 75.3%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 500 유로 역시 102.1%에서 88.7%로 급락했다. 한국은 더 심하다. 지난해 5만원권의 회수율은 40.1%에 그쳐 미국과 유로존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금융권에서 돈이 아예 퇴장됨에 따라 경제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제 도입 이후 유럽,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활력지표인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가 떨어지는 움직임이 더 뚜렷하다.

정도 차는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제도는 정책무력화 명제와 같은 연관이 있다. 통화정책의 무용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경제주체가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함에 따라 금리인하와 총수요간의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통화정책 전달경로(통화공급→금리인하→총수요 증가→경기회복)가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울트라 소비 살리기 처방... 백약이 무효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이 제로금리 정책을 일제히 추진함에 따라 이제는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더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다. 한 나라의 적정금리를 따지는 피셔 공식, 테일러 준칙, 수정된 테일러 준칙 등 어떤 방안으로 금리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금리는 적정수준에 비해 크게 낮게 나온다. 마이너스 금리제도는 일종의 화폐환상인 민간의 부채경감신드롬을 이용하기 위해 적정수준보다 낮은 금리를 더 떨어드려 경기를 부양하는 극약처방이다.

하지만 가계부채 부실 등과 같은 경제주체의 현금흐름 상에 문제가 있으면 경기부양 효과보다 또 다른 위기를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씨티 그룹의 월럼 뷰이터 이코노미스트 등이 “앞으로 현금만 들고 있으면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헬(hell·지옥) 세금’ 방안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조치든 돈을 돌릴 수 있어야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나오는 구상이다. 더 주목되는 것은 모든 현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초강경 급진적인 방안도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최고권종 발행 중단, 보유현금 과세, 현금 폐지 등을 강구한다면 과연 경기가 살아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어떤 방안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여유 자금(현금)을 써야 경기가 실아날 수 있다. 총수요 항목별 기여도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육박하는 선진국일수록 더 그렇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제로 금리,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제 등 울트라 금융완화정책을 추진해 왔어도 소비가 빨리 살아나지 못해 세계 경제가 좀처럼 저성장 국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종전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뉴 노멀’ 환경이 도래됨에 따라 경제주체가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안전통화 저주’에 대한 우려
항상소득가설(밀턴 프리드먼), 생애주기가설(안도·모딜리아니) 등 소비이론에 따르면 경제주체가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게 느낄수록 그만큼 기대소득(항상소득)이 높아져야 소비를 늘릴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제 등은 기대소득을 낮추는 요인으로 소비보다 저축을 늘리는 부작용이 더 크게 우려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제도 도입 이후 엔화 가치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안전통화 저주’에 대한 우려가 재현되고 있다. 안전통화 저주란 미국 버클리대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처음 주장했던 용어로 경기침체 속에 엔화가 오히려 강세가 돼 가뜩이나 어려운 일본 경제를 더 어렵게 하는 국면을 말한다. 엔저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안전통화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2 역(逆)플라자 합의’가 나와야 한다는 시각이 급부상하고 있다. 역플라자 합의란 1995년 4월 엔·달러 환율이 80엔선이 무너지자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선진국 7개국 간에 맺었던 ‘달러 강세-엔 약세’를 도모하기 위한 협약이다.

달러강세 피해 우려... 미국 환율 감시 나서
미국의 태도가 관건이다. 하지만 미국경제도 녹녹치 않다. 지난해 2분기 이후 매분기 성장률이 발표될 때마다 반토막 나고 있다. 특히 올해 1분기 성장률은 0.5%로 지난해 4분기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2015년 2분기 3.9%→3분기 2.0%→4분기 1.4%→2016년 1분기 0.5%). 미국 중앙은행(Fed)의 경기판단기조인 ‘완만한 회복세’을 무색케 할 정도다. 민간소비, 투자, 투자, 정부 지출 등 총수요 항목별 기여도를 보면 수출이 부진한 점이 눈에 띤다. 세계 경기가 부진한 것에 원인이 있지만 일본, 유럽 등 교역상대국의 자국통화 약세정책에 따른 반사적인 달러 강세의 피해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Fed의 계량모델인 ‘퍼버스(Ferbus=FRB+ US)’에 따르면 달러 가치가 10% 상승하면 2년 후 미국 경제 성장률이 무려 0.75% 포인트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Fed, 재무부, 상무부, 무역대표부(USTR) 등 수출관련 모든 미국 정책부서가 반사적인 달러 강세 피해를 우려해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내 환율주무부서인 재무부가 발 벗고 나섰다.

올해 2월 이후 제이콥 루 재무장관은 더 이상 일본, 유럽 등의 금융완화를 통한 자국통화 약세책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올해 첫 BHC(베넷-해치-카퍼)법과 연계해 발표했던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한국, 중국, 대만과 함께 일본, 독일을 이례적으로 환율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환율감시 심층대상국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외환시장 개입 의혹 등을 제기해 언제든지(빠르면 하반기 보고서) 한 단계 높일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세계 경제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미국의 이런 요구에 일본, 유럽 등이 추가 금융완화를 통한 자국통화 약세책으로 맞대응할 경우 커다란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가 글로벌 환율전쟁까지 불어 닥칠 경우 ‘대침체기’에 빠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올해 4월 ECB와 BOJ 회의에서 드라기와 구로다 총재는 ‘NATO(No Action Talk Only)’’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아무런 추가 금융완화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마이너스 금리제도의 효과가 나오기까지 좀 더 지켜보겠다는 이유다. 하지만 미국에 맞대응하다간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숨은 의도가 작용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추가 금융완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 없다면 일본 경제가 가장 우려된다. 마이너스 금리제도 도입 이후 엔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 아베노믹스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보다 앞서 도입했던 유럽은 아직까지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6월에는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영국 국민투표도 예정돼 있다.

지속되는 미국의 반격... 한국도 태풍권에
일본과 유럽을 겨냥했다 하더라도 교역상대국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반격이 지속될 경우 한국도 피해갈 수 없다. 올해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BHC법의 세 가지 환율조작국 지정요건(△국내총생산(GDP)대비 3% 이상 경상수지흑자국 △매년 200억달러 이상 대미(對美) 무역흑자국 △환시개입비중 GDP대비 2% 이상) 중 두 가지가 걸렸기 때문이다.

세 가지 기준 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과다한 경상수지흑자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특히 우리처럼 수출 감소 속에 수입이 더 감소하는 ‘불황형 흑자’일수록 그렇다. 규제완화와 세제혜택 등을 통해 기업과 금융사의 글로벌 투자를 적극 권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 포트폴리오 성격이 강한 외자 유입은 ‘영구적 시장개입(PSI)’을 통해 밖으로 퍼내야 한다.

추가 금리인하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주체가 금리수준 부담보다 미래 불확실성을 더 높게 느끼는 통화정책 여건에서는 금리인하에 따른 경기부양효과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달러 환율을 상승시켜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가능성을 높이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부문에 자금을 집중 지원하는 ‘한국형 양적완화’도 세계무역기구(WT)의 보조금 조항에 위배돼 통상마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달러 투자자는 그 어느 때보다 ‘균형’을 찾아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 추가 원화 약세를 노리다간 국가 차원에서 환율조작국에 걸려 엄청난 피해가 자신에게 되돌아올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에 걸릴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도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낮아져 ‘슈퍼 달러’ 시대가 올 가능성은 더 멀어지고 있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사
객원 논설위원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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