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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브레튼우즈 체제… 한국이 최대 피해자 되나?
[한상춘의 경제 포커스]
2016년 10월 07일 (금) 기업앤미디어 web@biznmedia.com
최근 대내외 외환시장은 ‘원화 강세’로 요약된다. 2월말과 대비해 불과 6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원·달러 환율은 140원, 원·엔 환율은 70원 이상 급락했다. 다른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도 원화 가치가 절상됐다. 수출업체로 본다면 ‘환율 쇼크’에 해당하는 절상 폭이다. 우리도 일본처럼 ‘원화 강세 저주’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블안한 브레튼우즈 체제가 우리 경제에 파장에 대해 알아본다.

 

최근 들어 미국 달러화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란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미국 달러화만이 금과 일정한 교환비율을 유지하고 각국의 통화는 기축통화와의 기준 환율을 설정·유지함으로써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제무역을 증진시켰다. 진정한 의미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유지됐던 때다. 제1 브레튼우즈 체제가 종료된 것은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 선언 때문이다. 그 후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를 골간으로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 합의하에 환율제가 유지됐다. 미국이 자국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 체제를 유지했던 것은 아시아 국가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공산주의의 세력 확산을 방지하고자 했던 숨은 의도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제2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의 이런 의도를 충분히 달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에서 제2 브레튼우즈 체제를 2차 대전 이후 폐허가 된 유럽 경제의 부흥과 공산주의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이 지원했던 ‘마셜 플랜’의 또 다른 형태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이 대표적인 국가다.

   
 

그 후 제2 브레튼우즈 체제에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이다. 아시아 통화에 대한 의도적인 달러화 약세로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위험수준에 도달했다. 당시 레이건 정부는 여러 자체 해결방안을 동원했으나 결국은 선진국 간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제2 브레튼우즈 체제가 균열조짐에서 벗어나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1995년 4월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와 아시아 외환위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역플라자 합의에 따라 달러화 가치가 부양되는 과정에서 외환위기로 아시아 통화가치가 환투기로 폭락하면서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간의 구도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미국의 경상적자가 다시 불거지면서 19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됐다. 특히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쌓인 쌍둥이 적자로 달러화 가치가 모든 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임에 따라 더 이상 기축통화 역할을 당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시각이 제기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최대 시련을 맞았다.

미국 경제, 달러화 강세 여전히 부담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흔들리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누적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로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금융위기 후유증에 따른 ‘낙인 효과'라 볼 수 있다. 미국 이외 국가의 탈(脫)달러화 조짐도 원인이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이 가시화됐다. △중심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 △중심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글로벌 불균형 조정메커니즘 부재 △과다 외화보유 부담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트리핀 딜레마'란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시한 것으로 유동성과 신뢰성 간의 상충관계를 말한다.

   
 

중심통화국인 미국은 경상수지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부채 증가로 신뢰성이 떨어져 공급된 통화가 환류되는 메커니즘이 떨어져 미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앞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재차 강화될 경우 3기에 해당한다. 외형상 여건은 형성돼 있다. 유럽, 일본, 중국 등 미국 이외 국가는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제도 등을 통해 금융완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는 떨어지고 달러화는 강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달러화 강세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 경기는 완전치 못하다. 달러 강세에 따른 경기 부담은 의외로 크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계량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달러 가치가 10% 상승하면 2년 후 미국 경제 성장률이 무려 0.75%포인트(p)가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역적자도 재 확대 추세다. 올해 5월 이후 무역적자는 증가 추세다. 같은 기간 중 재정적자도 월간 규모로 다시 500억 달러를 넘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무역적자가 재정적자를 유발하는 ‘쌍둥이 적자론’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쌍둥이 적자가 확대되면 2011년에 떨어졌던 최상위 신용등급(S&P사 기준)을 회복할 길이 없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가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달러 강세가 재현된다면 언제든지 침체국면에 재추락할 위험이 높다. 현실화된다면 ‘제2의 에클스 실수’에 해당하는 ‘옐런의 실수’다.

제이콥 루 재무장관도 대미 흑자국을 중심으로 환율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연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국제통화제도는 1976년 킹스턴 회담(길게는 스미드소니언 체제 포함) 이후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국가 간 조약이나 국제협약이 뒷받침되지 않아 “없는 시스템(non-system) 혹은 젤리형 시스템(jelly system)"으로 지칭된다. 그 결과 킹스턴 달러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는 이전보다 느슨하고 불안한 형태로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원화, 경제상황 부진에도 초강세 국면
시스템이 없는 국제통화제도하에서는 기축통화의 신뢰성이 크게 저하되더라도 이를 조정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새로운 기축통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는 없다(<표 1> 참조). 유일한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경기활성화 등을 위해서라도 대외불균형을 시정하려고 하지만 무역수지 흑자국은 이를 조정할 유인이 없어 글로벌 환율전쟁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국제통화제도 개혁에 공감하는 학자는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예, 1980년대 중반 플라자 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회담에서 ‘경상흑자 4% 룰(GDP대비 4%를 상회하는 경상흑자국은 시장개입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 합의된 것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 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블안한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한국이 문제다. 올해 8월 이후 대내외 외환시장은 ‘원화 강세’로 요약된다. 지난 2월말에 대비해 불과 6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원·달러 환율은 140원, 원·엔 환율은 70원 이상 급락했다. 다른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도 원화 가치가 절상됐다. 수출업체로 본다면 ‘환율 쇼크’에 해당하는 절상 폭이다. ‘특정국의 통화 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실상이 반영되는 얼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작년 성장률이 2.6%로 추락했고 올해는 2.5% 내외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도 일본처럼 ‘원화 강세 저주’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안전통화 저주’란 베리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처음 주장했던 용어로 주로 일본 경제에 붙여져 왔다. 일본은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속에서도 미국, 유럽의 잇따른 위기로 엔화는 오히려 안전통화로 부각돼 강세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2012년 12월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제정책)가 태동된 직접적인 계기다.

대부분 통화에 대해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이른바 ’쩐(錢)의 전쟁‘으로 상징되는 국제 간 자금흐름 구조에서 성장률과 관계없이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자금의 안내판 역할을 하는 벤치마크 지수로 볼 때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지수로는 ’선진국‘,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셜 지수(MSCI)로는 ’신흥국‘이다. 한국의 신용등급도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

가장 최근에 조정한 미국의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기준으로 우리 신용등급은 ‘AA’다. 한국 자체적으로는 최고등급이자 중국보다 한 단계, 일본보다 무려 두 단계나 높은 수준이다. 우리보다 앞서는 국가는 최고등급(AAA)인 독일, 캐나다, 호주와 AA+인 미국 등 4개국뿐이다.

투자의 3원칙인 수익성·안정성·환금성으로 볼 때 금융위기 이후 풍부해진 유동성 때문에 환금성을 크게 고려치 않는다. 그 대신 수익성과 안정성은 오히려 위기 이전보다 더 중시한다.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선진국은 수익성이 낮은 대신 안정성이 높으나 개도국은 이와 반대로 인식돼 왔다. 이 때문에 선진국 자금은 높은 수익을 쫓아 잉여자금은 펀드 형태로, 잉여자금이 없을 때에는 금리차를 이용한 캐리자금 형태로 개도국에 유입된다. 반대로 개도국 자금은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해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는 미국 국채를 비롯한 선진국에 투자하는 것이 정형화된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유럽 등 순차적인 위기로 선진국 자산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2차 대전 이후 유지돼 왔던 국제 간 자금흐름 구조가 흐트러졌다. 최근 눈에 띠는 현상은 미국의 신용등급이 떨어졌던 2011년 이후 다시 한국이 선진국의 수익성 추구자금과 개도국의 안정성 추구자금의 공동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는 점이다.

‘원화 강세 저주’ 피할 대안 마련 시급
우려되는 것은 글로벌 자금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우리도 일본처럼 ‘원화 강세 저주’에 시달린 것인가 하는 점이다. 리스크 이론에서 특정국 통화가 세 가지 위험이 적으면 안전통화로 평가된다. 가장 중요한 ‘시장 리스크’는 시장상황 변화로 자산의 가치가 변동할 가능성을 의미하며 가격의 표준편차, 준분산 등으로 평가한다. ‘유동성 리스크’는 자산의 유동성이 부족해 결제의무 이행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으로 거래량, 매매호가 스프레드 등을 통해 측정한다.

   
 

‘신용 리스크’는 각종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으로 통화의 경우 국가신용등급(무디스 등 3대 신용평가사),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 프리미엄 등에 반영된다.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표준편차를 구해보면 원화의 시장 리스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가 많은 중심통화 뿐만 아니라 각국의 경제규모에 대비시켜 볼 때도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변동성이 심하다는 의미다. 특히 특정국 통화의 하방 변동성을 측정하는 준분산의 경우 원화가 가장 높게 나온다. 유동성 리스크는 더 높게 나온다. 원화 거래량은 우리 경제위상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시장의 심도를 보여주는 매매호가 스프레드도 우리와 경제여건이 비슷한 대만과 싱가포르 달러화보다 높게 나온다.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 프레미엄과 국가신용등급으로 측정되는 신용 리스크는 최근 들어 개선되고 있어 그마나 다행한 일이다.

아직까지 원화는 안전통화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최근처럼 경제여건과 관계없이 모든 통화에 대해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은 정책적으로 잘 대응하면 불안한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일본처럼 원화 강세 저주에 시달리는 것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어느 때보다 외환당국의 역할이 요구된다.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 편승해 우리 여건과 벤치마크 지수 간 괴리에서 들어오는 외국자금은 조절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는 부과하지 않다가 과다하게 유입될 때 부과하는 ‘이원적 외화거래세’ 도입 등 보다 과감한 정책이 요구된다.

국가신용등급도 우리 여건에 맞지 않게 높은 것은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다. 높은 신용등급으로 외국자금이 많이 들어와 원화 가치가 강세될 경우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다한 경상수지흑자부터 줄여야 한다. IMF가 ‘영구적 시장개입(PSI)을 생각해야 할 때다. PSI란 외화가 들어오면 해외로 그대로 퍼내는 정책을 말한다. 경기대책으로 재정정책을 보다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재정지출을 국가채무 비율이 45%수준까지 될 정도로 늘려 나가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통화정책 전달경로’ 상 금리와 총수요 간 민감도에서 이미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여건에서는 외화든 재정이든 과다 유동성에 따른 ‘원화 강세’와 ‘기형적인 신용등급 상향 조정’ 현상만 심화시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사
객원 논설위원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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